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펄 벅 (문단 편집) == 한국 관련 == >한국은 고상한 국민들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다. >---- >펄 벅의 소설 《The Living Reed》 서문 中 [[한국]]에도 여러 번 와서 정·재계 관계자 및 문학가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서울대학교 장왕록 교수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대지 3부작의 초기 번역을 장교수가 맡았다. 장왕록 교수의 딸인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번역한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원제: The Living Reed)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책의 초판본 표지에는 '아리랑' 가사가 쓰여있고, 서문에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언급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영미 언론에서 대지 이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한인들을 상대로 대장 노릇을 하던 시절에 쓴 《[[일본 내막기]]》의 서평과 추천서를 남겼으며,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1968년)를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와의 교분도 있었는데, 후일 그녀의 작품에 '김일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고, 스스로 박[[진주]](펄을 [[번역]]한 이름)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쓰기도 하는 등 여러 점을 미루어 볼 때 한국에 대한 애착이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활발히 복지 사업을 벌였다. [[부천]]에 있던 [[유한양행]] 소사 공장이 이사를 가자 [[유일한]]의 도움으로 그 부지를 매입, 1964년 한국펄벅재단 소사희망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1975년 문을 닫을 때까지 9년간 8번이나 소사희망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직접 씻기고 돌봤다. 소사희망원이 문을 닫은 후에는 부지가 일반에 매각되고 주거지가 되었지만, 2006년 부천문화재단이 부지 일부를 매입하여 소사희망원 건물 한 동을 복원, 펄벅기념관을 세웠다. 일설에 의하면, 1962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펄 벅한테 “내 생각에는 동맹 관계라고 미군이 너무 퍼주는데, 그만 한국에서 철수해야 할 것 같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우리는 빠져 나오고 대신에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맡도록 해야 할 것 같소."라고 말하자,[* 케네디의 재임기에 한국은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비롯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인 빈곤, 저개발 상태에 허덕였으며, 케네디는 그러한 한국의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는 "그들은 서로 같은 인종 같아 보일지 몰라도 서로 불공정했던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힘 있던 쪽에 다시 통제권을 주겠다는 소리는, 마치 우리 미국이 예전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와 같습니다."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이에 케네디도 농담이었다며 물러섰다고. 그녀가 세운 펄벅 재단의 고아원의 아이들이 후에 [[함중아]]와 양키스를 구성하면서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남기기도 했다.[* 단, 함중아는 고아가 아니었다. 둘째 형이 살던 [[파주시]]로 올라가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던 중 펄 벅재단 소속의 고아원에 배달갔다가 그 자리에서 얼떨결에 입소하게 된 것이다.] [youtube(Nagr_KkFlac)] 펄벅 재단이 당시 국내 어린 혼혈고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고 영향을 미쳤는지는 당시 미군 혼혈고아들의 삶을 다룬 KBS 다큐 <25시 아메리안들>를 참고하면 좋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